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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홍건 신도비와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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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고아빠 2014. 10. 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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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高曦)

[정의]

1560(명종 15)∼1615? 조선 중기의 무신.

[개설]

본관은 제주(濟州).

[생애]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수문장이었던 그는 선전관이 되어 왕을 호위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당시 곽산군수이던 이경준(李慶濬)이 왕을 호종하게 됨에 따라 특지로 이경준의 직을 맡게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호조판서 김수(金睟)의 천거를 받아 공세전운사(貢稅轉運使)에 임명되어 명나라 사신들의 영접에 진력하였다. 1601년 홍원현감 재직시에도 늙고 귀가 어두운데다가 행정을 향리에게 일임하여 민간의 원성이 높다는 탄핵을 받았으나, 파직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과 유원첨사를 거친 뒤 풍천부사를 역임하였다. 1604년 호종공신으로 18공신회맹록(十八功臣會盟錄)에 들었으며,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록되어 영성군(瀛城君)에 봉하여졌다.

[상훈과 추모]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고홍건(高弘建)

[정의]

1580(선조 13)∼1655(효종 6). 조선 중기의 무신.

[개설]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입부(立夫). 아버지는 성주판관 현(晛)이다.

[생애]

1603년 무과에 급제한 뒤 1613년(광해군 5)한양의 도성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었으며, 조상의 큰 공으로 무관직 6품에 승진되었다.

1624년(인조 2)이괄(李适)의 난 때 인조를 호종하여 공주에 간 공로로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가 되어 영원군(瀛原君)에 책봉되었다. 이어 평안도 희천군수와 여산영장(礪山營將)을 거쳐 5위의 장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를 호가(扈駕)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 서쪽 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충청도병마절도사와 오위도총부부총관, 서흥부사 등을 거쳐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제수되었다. 1651년(효종 2)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글 출처: 한국문화대백과사전)

 

 

 

후손인 고광술(79세)씨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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