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에서
윤은경
두려웠던 것은 영원히 스러지지 않을 것같은 서원이 아닐른지요
금당의 주초가 놓였던 자리는 흰 눈에 덮여 있습니다
56억 년, 그 먼 기다림을 견디려 했겠지요
검은빛 이끼는 탑 아래쪽으로부터 기어 올라와 철창이 닫아 건 어둠 속으로 망설임없이 들어갑니다
그 안에 죄 있음을 일깨우는 소리
바람이 불 때마다 이끼들은 비명처럼 웁니다
가슴 안쪽을 후벼 파듯이, 때로 훨훨 타듯이
그렇게 오래, 탑은 느린 세월을 걸어왔습니다
내 안에 고여 있는 어둠이 깊어 갑니다
원왕생 원왕생 외는 경전의 첫구절부터 나는 어둠입니다
발 어긋나며 걸어온 길이 덜컥덜컥 소리를 냅니다
이 악물고 버틸수록 회오리치던
그리움, 저 허물어짐은
원도 한도 자취없이 고루 넓어져 삶도 죽음도 모두 평등해 지는 것
마음의 울뚝불뚝함이 56억 년 걸려 스스로 무너지는 길입니다.
전북 익산 미륵사지(2000)
미륵사지 석탑
정건우
허물어져도
그 아름다움이 이렇게 견고하다니
하늘 받치고 싶은 층층의 꿈
제물처럼 포갠 채
천사백 년 두께로 고이는 새파란 무게
때로 수천 번 마음은 무너져
지친 기다림 조각조각 흩어지려니
눈 뜨면
쉼 없이 파고드는 분열의 유혹
대님 치듯 동여 묶으며
굳어가는 다릴랑 생으로 휘어
배흘림 방형 석주로 다잡은 그대
발아래 질펀한 고통
구름 위로 밀어올리고
홀로 오롯한 그대, 부서진 몸이
이렇게 찬연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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