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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천암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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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고아빠 2013. 6. 2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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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지막 소원]

 

내 고향은 전남 해남이다. 지금은 육지가 된 고천암 방조제 인근 마을에서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또 그곳에서 보냈다. 어성교와 해창만 일대에는 엄청난 뻘밭이 펼쳐져 있었는데,

초등학교 때 우리 또래 아이들은 그 뻘밭에서 알몸으로 뒹굴고 놀았었다.

짱뚱어도 잡고 게도 잡고 조개도 캐고..., 어쩌다 운 좋은 날엔 낙지도 잡았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신났던 잊지 못할 추억은 아버지와 함께 망둥어(해남에서는 문저리) 낚시를 갔던-

1년 중 여름날만 있었던 적어도 나를 최고로 들뜨게 했던 서너 번의 행사였다.

형들과는 달리 나는 낚시를 좋아해서 그 행사는 매번 아버지와 나 단 둘이었지만,

큰 호박잎에 싼 보리밥과 된장, 방금 잡은 망둥어의 감칠맛은 아직도 잊지 못할 최고의 점심이었다.

 

물때를 맞춰야만 하기에 보통 새벽 4시부터 5시 사이에 해창만 뻘밭에 도착하여

갯지렁이를 잡고 아침 낚시를 시작하면 오후 밀물 때쯤 바다 밖으로 나와

낚시한 망둥어를 아버지의 숫자와 비교하면서(물론 내가 잡은 수는 항상 아버지에게 뒤졌지만)

돌아오는 들길이 얼마나 즐겁고 뿌듯했던지!! 거기에 덧붙여, 오는 길에 뱀장어 몇 마리라도 낚으면

그건 형들에게 두고두고 자랑거리가 되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사실 형들은 귀찮은 동생 몰래 자기들끼리만 낚시를 다녔었다.)

 

아버지는 24년 전에 돌아가셨다.

임종 한 달 전쯤 둘째 형이 서울에서 자가용 승용차를 몰고 고향에 왔었는데,

형이 오자 아버지는 한 가지 소원이 있다 하셨다.

[고천암 방조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마지막으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부탁이셨다.

하지만 그날 형은 바빴었는지 다음 기회에 꼭 모시겠다고 말하고 해가 지기도 전에 서울로 가버린 것이다.

그 날이 형과 아버지의 마지막 이별일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8남매 중 임종은 나 혼자 지켰다.

- 아니 사실 마흔이 다된 내가 아버지 곁에서 실컷 자고나서 아버지를 부르니 아무런 대답이 없으셨다. -

 

그 고천암에 들러 아버지를 생각했다.

11월 황량한 간척지,

철새들의 날개짓에 떠오르는 바닷바람이 잡힐 듯 보이지 않는 그림자 되어,

내 굽은 등허리에 쉰내 나는 아버지의 진한 땀내음으로 내려앉고,

짙은 구름 사이로 내리는 빛살 속에서 마지막 소원을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눈이 흐려졌다. 밤늦게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 마디 변명이 문득 떠올랐다.

"그 때 나도 차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전남 해남 고천암(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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