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어느 날 곡성 들길을 걷다가 강풍에 쓰러진 벼를 카메라에 담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며칠 전 스캔을 하면서 문득 이 사진에 생각이 머물렀다.
"쓰러진 벼를 촬영했던 순간의 내 행위는 기록인가, 창작이었던가?"
사진의 역할을 복합적으로 말하지 않고 애써 분석하려 한 이유는 당시에 농사일을 전혀
알지 못했고 체험하지도 못했던 나로서는, 쓰러진 벼에 젖어든 농민의 한숨과 절망을, 아니면 슬픔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내게 이 사진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사진은 "내가 왜 이 대상 앞에 서있는가?"에 대한 명백한 답변이 내 마음속에 떠오르지 않을 경우
그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
남들의 공감을 기대하기 전에 이 사진에 내가 진정으로 의미있고 소중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지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