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마을엔 골목이나 울타리, 잡초 우거진 공터에 피마자 나무가 엄청 많았다.
일제 강점기 시절 2차 대전을 일으킨 일본이 항공윤활유를 조달하기 위해 전국 마을마다 피마자를 심게 했다는 말을 아버지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변산반도 도청리에서 우연히 피마자 나무를 발견하곤 내 마음 저편에 꼭꼭 숨었던 어린 시절 고향과 부모님과 그리고 얼마간 남보다 더 많은 농토를 지녔다는 이유로
일본인들에게 모진 핍박을 받았다는 부모님의 슬픈 이야기가 주마등처럼 가슴을 훑고 갔다.
그리움은 세월이 흐르면서 아름답게 포장되지만 일본인들에 대한 내 분노는 시간과 함께 더욱 더 커져만 가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친일]이라는 말을 이해는 한다. 그러나 두고두고 용서가 안되는 이유는 내 부모남의 힘들었던 삶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하는지도 모른다.
전북 부안 변산 도청리(2015.09.16)
| 그대 있음에 (0) | 2015.09.23 |
|---|---|
| 오래된 미래-마지막 장날 (0) | 2015.09.23 |
| Hymnen an die Nacht(밤의 찬가) (0) | 2015.09.22 |
| A Night with Fullmoon (0) | 2015.09.22 |
| 가을 날 저녁을 위하여 (0) | 2015.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