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암실에서 필름을 현상하고 사진을 인화하던 설렘과 긴장과 환희의 순간들이 엇그제 같은데,나는 이제 그 소중하고 아름답던 사진의 추억을 빛바랜 흑백사진과 함께 서재의 한켠에 쌓아두고,내게 늘 자신감을 심어주고 동고동락했던 핫셀블라드 시리즈와 캐논 시리즈도 모두 함께 기약없는 휴가를 보내려고 합니다.
디지털의 위력에 항복하여 미루고 미루던 암실의 문을 닫으면서 이리도 큰 아쉬움이 남는 마음은 수십 년 간 사진과 함께 젊음을 보낸 숱한 사진가들의 공통된 상실감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신속함과 효율성'이 '느림과 신중함'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사진도 그 가치와 본질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어야 했지만, 그 변화 가운데서 '사진예술'에 미친 영향은 가히 '혁명적'이라 표현해도 과장이 아니겠지요.
사진을 시작하던 때부터 나는 [사진예술]이란 용어에 그리 익숙했던 건 아닙니다. 사진 그 자체를 그냥 즐기려고 했던거죠. 그런데도 왠지 디지털 사진에 여전히 거부감과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나의 나이 탓일까요?